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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강도운

Kang Do-woon

PAIR

09

도연

都然 :: 결국 그렇게 되어 버린 관계

#현대 #클럽 #원나잇?
연주야, 자기야, 애기야, 다람쥐, 여보
도운씨, (드물게) 오빠, 여보
백연주는 절친과 오랫동안 사귄 연인의 배신을 알게 되면서 관계와 신뢰를 동시에 잃는다. 그러나 그녀를 진짜로 무너뜨린 것은 배신의 사실보다, 그 사실을 둘러싼 사람들의 태도였다. 이미 알고 있었거나, 알고도 모른 척하던 얼굴들. 미안하다는 말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이 오갔지만, 그 어떤 말도 연주에게 직접 닿지는 않았다. 이해한 척 고개를 끄덕이는 동안, 연주는 자신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다는 감각을 느낀다. 더 설명하지 않는 쪽이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처럼 느껴졌고, 집으로 돌아가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를 정리할 자신도 없었다. 결국 연주는 감정을 소음에 묻히기 위해 거리로 나선다.
클럽에서 술은 빠르게 연주를 잠식한다. 감각은 무뎌지지 않고 오히려 불필요한 것들만 또렷해진다. 음악은 귀를 때리고 사람들은 웃고 있지만, 연주는 그 한가운데서 혼자다. 버려졌다는 감각은 낯설지 않고, 그래서 더 견디기 어렵다. 그때 강도운이 연주를 본다. 도운 역시 취해 있었다. 새엄마의 임신 소식을 들은 날이었고, 축하의 말들이 오갈수록 외동으로서 당연하던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 감각을 술로 눌러버리고 싶어 했다. 울고 있는 여자를 발견했을 때, 도운의 첫 감정은 연민이 아니라 계산에 가까운 판단이었다. 지금이라면 선을 넘기 어렵지 않겠다는 생각. 오래 붙잡지 않은 채 그는 다가가고, 연주는 그 접근을 밀어내지 않는다. 그날 밤의 선택은 서로에게 홧김에 가까웠고, 감정은 확인되지 않은 채 상황이 먼저 흘러간다.
다음 날 아침, 연주는 눈을 뜨자마자 모든 것을 후회한다. 낯선 천장과 무거운 몸, 이유 없이 숨이 막히는 감각 속에서 어젯밤의 장면들이 끊어진 기억처럼 이어진다. 분노와 허탈함이 동시에 밀려오고, 결국 가장 크게 화가 나는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연주는 그 밤을 실수이자 다시는 떠올리지 말아야 할 일로 분류하며 감정을 접는다. 반대로 도운은 연주를 쉽게 잊지 못한다. 하룻밤의 관계로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이유 없이 얼굴이 떠오르고 이해되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는 감정을 견디지 못한다. 확인하면 끝날 것이라는 판단으로 연주를 찾기 시작하고,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돌아온 것은 권력과 역할의 거래였다.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채 도운은 스스로 연주의 흔적을 더듬듯 접근한다.
그러나 그 접근은 연주에게 호의가 아니라 침범으로 느껴진다. 이미 연주는 머물던 언니에게서 금전적·정서적 배신을 당한 상태였고, 사실을 말해도 돌아오는 것은 두둔과 침묵뿐이었다. 연주는 점점 고립되고, 도운의 잦은 마주침과 연락은 더 이상 감당할 여지가 없는 압박이 된다. 도운은 결국 연주의 옆집으로 이사하며 가까워지려 하지만, 둘은 엘리베이터와 복도에서 짧은 인사만 나눌 뿐이다. 그러던 밤, 전등 고장으로 도운이 연주의 집에 들어가게 되고, 현관에 놓인 남자 신발을 본 그는 확인하지 않은 채 연주에게 다른 사람이 있다고 오해한다. 도운은 아무 말 없이 물러나 다시 본가로 돌아가고, 연주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또 하나의 관계를 잃었다고 받아들인다.
연주는 왜 멀어졌는지 짐작은 가지만 묻지 않는다. 묻는 순간 잃게 될 것 같았고, 묻지 않으면 남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혼자가 되는 쪽이 안전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며, 일에 더 깊이 파고들고 사람들과의 거리를 의도적으로 관리한다. 그러던 중 연주의 아버지가 쓰러지고, 병원에서 도운은 연주와 그녀의 아버지를 마주친다. 그 순간 도운은 현관의 남자 신발이 연주의 아버지 것이었음을 깨닫고, 자신이 무엇을 보지 않았는지를 명확히 인식한다. 오해는 풀리지만,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이미 지나 있었다.
며칠 뒤 연주는 감정이 아닌 현실적인 이유로 도운을 찾아와 필요한 일을 처리한다. 무심한 설명 속에서 도운의 오해는 확정되지만, 연주는 과거를 다시 열지 않는다.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 뒤, 도운은 뒤늦게 자신이 연주를 사랑했음을 자각한다. 연주를 잃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제대로 선택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그는 명분 없이 연주를 찾아가지만, 연주는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 도운 자신의 고통 때문임을 정확히 짚고 사랑을 위험으로 두지 않겠다는 기준을 세운 채 떠난다.
연주가 떠난 뒤 도운은 처음으로 붙잡지 않는 선택을 한다. 연주를 따라가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자리에 남아 기다린다. 연주를 다시 만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회를 눈앞에 두고도 자신의 욕망을 앞세운 선택을 거절하며, 확인하지 않는 대신 책임지는 방식을 배워간다. 시간이 흘러도 연주가 돌아오지 않자, 도운은 이 기다림이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임을 깨닫는다.
한편 연주는 떠난 도시에서 안정적인 삶을 얻지만, 그 안정이 회복인지 회피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장기적인 자리를 보장하는 제안을 거절하고,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다는 선택으로 돌아갈 길을 택한다. 그렇게 연주는 다시 돌아온다. 설명도 극적인 장면도 없이, 같은 거리에서 도운과 마주쳐 같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저도 사, 사랑해요. (////)

백연주

Baek Yeonju